민간교류 정치적 이유로 중단 안돼야
서정성의 북한리포트
며칠 전 한 통의 메일이 왔다. 12월3일 개성에 들어와도 좋다는 방북허가서였다.
2개월마다 한 번씩 다녀오는 개성공단 진료이지만 이번만큼은 '혹시나 방북을 거절당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마음이 조마조마했다. 개성공단에 상주하는 인력을 포함해 왕래하는 인원까지 대폭 축소하겠다고 밝힌 '12·1 조치' 이후 남북관계가 날씨만큼이나 얼어붙었고 북녘 땅을 밟는 것이 예전처럼 쉽지 않음을 나 또한 감지했기 때문이다.
지난 8월 개성에 갔을 때 북측 의사가 "동무 삐라를 왜 뿌리시는 거요?" 하면서 퉁명스럽게 한마디 던질 때만 해도 이처럼 남북관계가 악화되리라고는 생각지 않았다. 개성공단 내에 있는 진료소에서 진료를 할 때 북측 사람들과 정치적인 이야기는 거의 하지 않지만 일상적으로 주고받는 대화 속에 "6·15선언과 10·4성명을 왜 이행하지 않는지 이해가 가질 않는다"며 불쑥 한마디씩 내뱉을 때는 뭐라고 답해야 할지 몰라 순간 말문이 막히곤 한다. 하지만 그 작은 불씨가 이렇게 큰 대립으로 커질 줄은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3일 남측 출입국 관리소를 지나 군사분계선을 넘어 북측출입국 관리소에 도착하니 여느 때와는 달리 분위기가 차가운 것을 느꼈다. 통행하는 인원도 확연히 줄어 한산한 분위기에, 예전 같으면 통과하는 사람들과 농담도 주고받고 북측으로 갖고 가는 돋보기나 안약을 개인적으로 요구할 경우 인심 좋게 기꺼이 나눠주기도 했는데 이번에는 전혀 달랐다. 시종일관 경색된 표정과 분위기가 맴돌아 농담 한마디 제대로 할 수 없었다. 그리고 북측출입국관리소를 지나 개성공단 내 병원에 도착했을 때도 이같은 분위기는 달라지지 않았다.
개성공단 내 병원은 건물 하나에 남측과 북측진료소로 따로 나뉘어 있다. 남측진료소에는 원장이 한명 상근하고 있으며 여러 의사들이 돌아가면서 진료봉사를 담당한다. 각 과의 전문의들이 매일 교체되면서 특별진료가 행해진다. 또 북측에서 내과 의사와 치과 의사가 1명씩, 그리고 간호사 2명이 파견돼 머물고 있다.
병원 개원 당시에는 문 하나를 두고 남측과 북측이 자유롭게 왕래하였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제한을 두더니 이번엔 아예 얼굴조차 볼 수 없도록 했다. 환자들 또한 북측 고급 관료들을 비롯해 몇 명씩은 남측진료소를 찾았는데 요즘엔 아예 발길을 끊었다고 한다.
병원 내의 분위기도 많이 달랐다. 예전에는 도착하면 환영해주고 북측노래도 불러 주었던 북측 의료진들의 얼굴에서 웃음이 사라졌다. 게다가 병원 내에 24시간 상주하던 응급구조사가 12월1일 조치로 추방당해서 분위기가 말이 아니었다. 병원살림을 도맡아하고 남측에서 진료차 방문하는 의사들의 가이드 역할을 해주었던 그의 빈자리가 너무 크게 느껴졌다.
애써 분위기를 바꾸려고 노력하면서 10월 방문 때 맞춰주기로 했던 안경을 꺼내 놓았다. 그러나 분위기는 바뀌지 않았다. 남북관계의 악화가 인도주의적 차원의 진료에까지 영향을 주고 있다고 생각하니 아쉬운 마음 금할 길이 없었다.
그러던 중 고심하다가 꺼낸 말 한마디에 분위기가 반전됐다. "삐라 살포를 중지하겠다는 발표가 있었다"고 전하니 북측 사람들의 표정이 순간 바뀌면서 "그게 사실입네까"를 반복하면서 몇 번이고 사실을 확인했다.
그리고 나선 점차 마음을 열기 시작했다. "개성공단의 협동진료를 통해 남북관계가 좋아졌으면 좋겠다" "통일의 그날까지 사이좋게 지내야 하지 않겠느냐" "우리가 노력하자"는 등 서로의 진심을 나누면서 얼었던 마음을 조금씩 녹이기 시작했다. 한결 편안해진 그들의 얼굴을 보니 돌아올 때 발걸음이 훨씬 가벼워진 듯하다.
수많은 말로 내 주장을 펼치기보다 이날 하루 내가 겪었던 일을 그대로 전달하면서 하고 싶은 말은 하나다. 민간차원의 교류들이 정치적인 이유로 중단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이며, 이념을 넘어 민족의 통일이 하루 빨리 앞당겨지기를 남북 모두 간절히 기대하고 있다는 것이다./광주 아이안과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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